함성소식 | <함성속보 13호> 분노!! 두산중공업지회 배달호 조합원 분신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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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03-01-09 17:44 조회4,929회 댓글0건본문
분노!! 두산중공업지회 배달호 조합원 분신 사망!
노조탄압에 온 몸으로 항거한 열사의 정신, 이제 악덕 재벌 끝장 낼 때까지 전국 투쟁으로 활활 타올라라!!
<긴 급 지 침>
전체 조합원 근조 리본 패용
(추후 지침 연맹비상중집 후 하달)
謹 故배달호 동지 弔
두산 악덕 자본의 노동탄압이 결국 50세의 한 노동자를 죽음으로 몰아 넣었다. 1월 9일 오전 6시 30분 경 두산중공업 노동자 광장에서 故 배달호 조합원이 검게 탄 채로 발견돼 큰 충격을 안겨 주었다. 두산 중공업 지회는 기자 회견을 열어 '두산의 노동탄압이 배달호 조합원을 죽인 직접 원인'임을 분명히 밝혔다. 이어 조합원 비상 총회를 열어 고인의 넋을 추모하며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고인은 평소 회사의 악랄한 노조탄압에 대한 절망감과 가압류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 등으로 고통을 겪어온 것으로 알려져 이번 분신 사망 사건은 노조탄압 때문에 일어난 두산 악덕 재벌에 의한 살인 행위다.
고인은 2002년 두산중공업 파업투쟁으로 작년 7월 23일 구속되어서, 9월 17일 출소했으며 현재 집행유예 기간 중에 있다. 회사에 의해 재산과 임금이 가압류 당해 있으며 정직 3개월의 징계를 받고 지난 12월 26일 징계기간이 끝나서 현장에 복귀한 상태였다. 고인은 자신의 승용차 안에 유서를 남겼다. 유족으로는 부인과 딸 두명, 아들 한 명이 있다.
금속연맹은 내일 1월 10일 두산중공업 지회에서 비상중앙집행위원회를 소집해 놓은 상태다. 전국 노동자의 총력연대투쟁으로 2003년 벽초부터 한 노동자를 죽음으로 내 몬 두산 악덕 자본을 반드시 박살내자.
열사의 한이다! 악질자본 두산자본 투쟁으로 박살내고 민주노조 사수하자!
<고인이 남긴 유서 전문>
출근을 해도 재미가 없다. 해고자 모습을 볼때 가슴이 뭉클해지고 가족들은 어떻게 지내는지 ? 두산이 해도 너무한다 해고자 18명 징계자 90명정도 재산가압류 급여가압류 노동조합말살 악랄한 정책으로 우리가 여기서 밀려난다면 전사원의 고용을 보장받지 못할 것이다. 지금 두산이 사택매각 식당하도급화 노동조합과 합의사항인데도 불구하고 일방적으로 시행한다고 하니 어처구니가 없구나 얼마전 징계자들이 출근정지가 끝나고 현장에 복귀하였지만 무슨 재미로 생산에 열심히 하겠는가 이제 이틀후면 급여 받는날이다 약 6개월이상 급여 받은적이 없지만 이틀후 역시 나에게 들어오는 돈
없을 것이다. 두산은 피도 눈물도 없는 악랄한 인간들이 아닌가 나는 매일같이 고민을 해본다 두산의 노동조합 말살정책 분명히 드러나 있다. 얼마전 구속자 선고재판 어처구니 없이 실형 2년이라니 두산은 사법부까지 개입하고 있다는 것이 눈에 보인다 공정해야 할 재판부가 절차를 거쳐 쟁의행위를 했는데도 불구하고 모든 것이 불법이라니 가진자의 법이 아닌가. 더러운 세상 악랄한 두산 내가 먼저 평온한 하늘나라에서 지켜볼 것이다 동지들이여 끝가지 투쟁해서 승리해주기 바란다. 불쌍한 해고자들 꼭 복직바란다. 나는 항상 우리 민주광장에서 지켜볼 것이다. 내가 없도라도 우리 가족 보살펴주기 바란다. 미안합니다.
두산중공업 노조 탄압의 역사
2000년 12월, 두산은 옛 한국중공업(현 두산중공업)을 특혜의혹을 받으며 헐값에 인수했다. 당시 두산은 자산 3조 7천억원에 이르는 한국중공업을 비롯한 19개 자회사를 합해 총 5조원에 달하는 한국중공업 자산을 단돈 3,057억원에 인수했다. 두산이 공기업인 한국중공업을 인수하고 제일 먼저 한 일은 '구조조정'이었다. '명예퇴직'이라는 이름으로 조합원 746명을 포함하여 총 1,124명의 사원을 정리했다. 간접직 160여명은 현장으로 전환배치되었고, 창원공장의 식당 몇 곳과 서울 사무소 운전직은 외주로 넘어가 그 자리에서 일하던 조합원들은 명예퇴직을 한 후 외주업체로 소속을 바꾸었다. 2001년 임단협에서도 회사쪽은 소사장제 도입을 고집했고 지회가 석 달동안 파업을 벌인 끝에 소사장제를 막아내고 연말이 되어서야 임단협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94년에 국내 최초로 연봉제를 도입한 바 있는 두산은 2002 임단협에서도 '능력급제'를 주장하는 등 구조조정의 고삐를 놓지 않았다.
두산 재벌의 악명 높은 현장탄압!! 다물단 교육 실시, 소사장제 도입.
두산그룹의 노조탄압은 잘 알려져 있다. 두산은 90년대 중반부터 악명높 '다물단 교육'을 대대적으로 실시했으며 소사장제를 도입했다.
이에 저항하는 노조간부들은 해고되고 구속되었다. 두산기계에서는 다물단을 앞세워 노조간부를 집단폭행해서 숨지게 하는 만행까지 저지른 바 있다. 두산유리 마산공장처럼 노조를 깨기 위해 잘 돌아가는 공장을 폐쇄하는가 하면, 두산전자에서는 노조 설립을 막기 위해 서류뿐인 노조를 미리 결성해 놓기도 한다.
두산 재벌의 수장이자 대한상공회의소 의장인 박용성, 노동조합 인정조차 못하는 인간!
작년 임단협에서 두산중공업지회는 회사쪽이 재작년에 합의한대로 집단교섭에 참가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회사쪽은 교섭을 회피하면서 5월에 일방적으로 단협해지를 통보했다. 지회가 파업에 돌입한지 보름째가 되어서야 회사는 교섭에 나왔다. 그러나 교섭 의지는 없었다.
회사는 금속노조 김창근 위원장을 비롯한 22명을 고소고발하고 2.26 파업을 빌미로 조합원들을 징계했다. 47일간의 파업을 마무리하고 지회가 현장에 복귀한 이후에도 회사쪽은 복귀당시의 합의 사항을 무시하고 해고 18명을 비롯해 무려 89명의 노조간부·조합원을 징계했다. 단협해지 전에는 "조합원에게 피해 없다"는 말로 조합원들을 현혹했다.
지회는 단협 만료일 이전에 교섭을 타결하려 했으나, 사측은 노조의 요구안을 한 가지도 수용하지 않고 개악만을 고집했다. 결국 두산중공업의 단체협약은 11월 23일부로 해지되고 말았다.
이에 앞서 6월 21일에는 두산중공업지회 파업투쟁과 관련, 금속노조 김창근위원장을 비롯한 무려 22명의 간부·조합원에게 체포영장이 발부되었다.
회사쪽은 11월 23일부로 단체협약을 일방해지하면서 조합전임자와 산업안전보건위원, 지회 파견 여사원에 대해 부서복귀를 통보하고 차량을 반납할 것을 요구했다. 사측은 전임자 13명 중 6명을 12월 4일자로 업부복귀 시키겠다고 통보하고 12월 2일까지 전임해제 6명의 명단을 회사쪽에 통보할 것을 요구했다. 마치 선심쓰듯, 당분간 7명의 전임자를 인정하겠다고 통보해놓고는 다른 6명의 전임자가 부서에 복귀하지 않으면 모든 전임자를 부서복귀 시키겠다는 협박도 빼놓지 않았다. 이와 함께 전임하고 있던 산업안전보건위원 5명과 조합에 파견한 여직원 1명에 대해서도 12월 4일부로 업무에 복귀하라고 통보했다.
결국 두산중공업지회는 12월 5일, △상근자 2명 축소 △산업안전보건위원 2명 축소와 3명은 임시상근 △HSD엔진(자회사) 산업안전보건위원 3명 축소(1명은 임시상근) △단협유효기간 1년에서 2년으로 연장 △임금동결 등의 내용으로 임단협을 합의했다. 그리고 오늘 한 노동자의 분신 사망이 일어난 것이다.
노조탄압에 온 몸으로 항거한 열사의 정신, 이제 악덕 재벌 끝장 낼 때까지 전국 투쟁으로 활활 타올라라!!
<긴 급 지 침>
전체 조합원 근조 리본 패용
(추후 지침 연맹비상중집 후 하달)
謹 故배달호 동지 弔
두산 악덕 자본의 노동탄압이 결국 50세의 한 노동자를 죽음으로 몰아 넣었다. 1월 9일 오전 6시 30분 경 두산중공업 노동자 광장에서 故 배달호 조합원이 검게 탄 채로 발견돼 큰 충격을 안겨 주었다. 두산 중공업 지회는 기자 회견을 열어 '두산의 노동탄압이 배달호 조합원을 죽인 직접 원인'임을 분명히 밝혔다. 이어 조합원 비상 총회를 열어 고인의 넋을 추모하며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고인은 평소 회사의 악랄한 노조탄압에 대한 절망감과 가압류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 등으로 고통을 겪어온 것으로 알려져 이번 분신 사망 사건은 노조탄압 때문에 일어난 두산 악덕 재벌에 의한 살인 행위다.
고인은 2002년 두산중공업 파업투쟁으로 작년 7월 23일 구속되어서, 9월 17일 출소했으며 현재 집행유예 기간 중에 있다. 회사에 의해 재산과 임금이 가압류 당해 있으며 정직 3개월의 징계를 받고 지난 12월 26일 징계기간이 끝나서 현장에 복귀한 상태였다. 고인은 자신의 승용차 안에 유서를 남겼다. 유족으로는 부인과 딸 두명, 아들 한 명이 있다.
금속연맹은 내일 1월 10일 두산중공업 지회에서 비상중앙집행위원회를 소집해 놓은 상태다. 전국 노동자의 총력연대투쟁으로 2003년 벽초부터 한 노동자를 죽음으로 내 몬 두산 악덕 자본을 반드시 박살내자.
열사의 한이다! 악질자본 두산자본 투쟁으로 박살내고 민주노조 사수하자!
<고인이 남긴 유서 전문>
출근을 해도 재미가 없다. 해고자 모습을 볼때 가슴이 뭉클해지고 가족들은 어떻게 지내는지 ? 두산이 해도 너무한다 해고자 18명 징계자 90명정도 재산가압류 급여가압류 노동조합말살 악랄한 정책으로 우리가 여기서 밀려난다면 전사원의 고용을 보장받지 못할 것이다. 지금 두산이 사택매각 식당하도급화 노동조합과 합의사항인데도 불구하고 일방적으로 시행한다고 하니 어처구니가 없구나 얼마전 징계자들이 출근정지가 끝나고 현장에 복귀하였지만 무슨 재미로 생산에 열심히 하겠는가 이제 이틀후면 급여 받는날이다 약 6개월이상 급여 받은적이 없지만 이틀후 역시 나에게 들어오는 돈
없을 것이다. 두산은 피도 눈물도 없는 악랄한 인간들이 아닌가 나는 매일같이 고민을 해본다 두산의 노동조합 말살정책 분명히 드러나 있다. 얼마전 구속자 선고재판 어처구니 없이 실형 2년이라니 두산은 사법부까지 개입하고 있다는 것이 눈에 보인다 공정해야 할 재판부가 절차를 거쳐 쟁의행위를 했는데도 불구하고 모든 것이 불법이라니 가진자의 법이 아닌가. 더러운 세상 악랄한 두산 내가 먼저 평온한 하늘나라에서 지켜볼 것이다 동지들이여 끝가지 투쟁해서 승리해주기 바란다. 불쌍한 해고자들 꼭 복직바란다. 나는 항상 우리 민주광장에서 지켜볼 것이다. 내가 없도라도 우리 가족 보살펴주기 바란다. 미안합니다.
두산중공업 노조 탄압의 역사
2000년 12월, 두산은 옛 한국중공업(현 두산중공업)을 특혜의혹을 받으며 헐값에 인수했다. 당시 두산은 자산 3조 7천억원에 이르는 한국중공업을 비롯한 19개 자회사를 합해 총 5조원에 달하는 한국중공업 자산을 단돈 3,057억원에 인수했다. 두산이 공기업인 한국중공업을 인수하고 제일 먼저 한 일은 '구조조정'이었다. '명예퇴직'이라는 이름으로 조합원 746명을 포함하여 총 1,124명의 사원을 정리했다. 간접직 160여명은 현장으로 전환배치되었고, 창원공장의 식당 몇 곳과 서울 사무소 운전직은 외주로 넘어가 그 자리에서 일하던 조합원들은 명예퇴직을 한 후 외주업체로 소속을 바꾸었다. 2001년 임단협에서도 회사쪽은 소사장제 도입을 고집했고 지회가 석 달동안 파업을 벌인 끝에 소사장제를 막아내고 연말이 되어서야 임단협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94년에 국내 최초로 연봉제를 도입한 바 있는 두산은 2002 임단협에서도 '능력급제'를 주장하는 등 구조조정의 고삐를 놓지 않았다.
두산 재벌의 악명 높은 현장탄압!! 다물단 교육 실시, 소사장제 도입.
두산그룹의 노조탄압은 잘 알려져 있다. 두산은 90년대 중반부터 악명높 '다물단 교육'을 대대적으로 실시했으며 소사장제를 도입했다.
이에 저항하는 노조간부들은 해고되고 구속되었다. 두산기계에서는 다물단을 앞세워 노조간부를 집단폭행해서 숨지게 하는 만행까지 저지른 바 있다. 두산유리 마산공장처럼 노조를 깨기 위해 잘 돌아가는 공장을 폐쇄하는가 하면, 두산전자에서는 노조 설립을 막기 위해 서류뿐인 노조를 미리 결성해 놓기도 한다.
두산 재벌의 수장이자 대한상공회의소 의장인 박용성, 노동조합 인정조차 못하는 인간!
작년 임단협에서 두산중공업지회는 회사쪽이 재작년에 합의한대로 집단교섭에 참가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회사쪽은 교섭을 회피하면서 5월에 일방적으로 단협해지를 통보했다. 지회가 파업에 돌입한지 보름째가 되어서야 회사는 교섭에 나왔다. 그러나 교섭 의지는 없었다.
회사는 금속노조 김창근 위원장을 비롯한 22명을 고소고발하고 2.26 파업을 빌미로 조합원들을 징계했다. 47일간의 파업을 마무리하고 지회가 현장에 복귀한 이후에도 회사쪽은 복귀당시의 합의 사항을 무시하고 해고 18명을 비롯해 무려 89명의 노조간부·조합원을 징계했다. 단협해지 전에는 "조합원에게 피해 없다"는 말로 조합원들을 현혹했다.
지회는 단협 만료일 이전에 교섭을 타결하려 했으나, 사측은 노조의 요구안을 한 가지도 수용하지 않고 개악만을 고집했다. 결국 두산중공업의 단체협약은 11월 23일부로 해지되고 말았다.
이에 앞서 6월 21일에는 두산중공업지회 파업투쟁과 관련, 금속노조 김창근위원장을 비롯한 무려 22명의 간부·조합원에게 체포영장이 발부되었다.
회사쪽은 11월 23일부로 단체협약을 일방해지하면서 조합전임자와 산업안전보건위원, 지회 파견 여사원에 대해 부서복귀를 통보하고 차량을 반납할 것을 요구했다. 사측은 전임자 13명 중 6명을 12월 4일자로 업부복귀 시키겠다고 통보하고 12월 2일까지 전임해제 6명의 명단을 회사쪽에 통보할 것을 요구했다. 마치 선심쓰듯, 당분간 7명의 전임자를 인정하겠다고 통보해놓고는 다른 6명의 전임자가 부서에 복귀하지 않으면 모든 전임자를 부서복귀 시키겠다는 협박도 빼놓지 않았다. 이와 함께 전임하고 있던 산업안전보건위원 5명과 조합에 파견한 여직원 1명에 대해서도 12월 4일부로 업무에 복귀하라고 통보했다.
결국 두산중공업지회는 12월 5일, △상근자 2명 축소 △산업안전보건위원 2명 축소와 3명은 임시상근 △HSD엔진(자회사) 산업안전보건위원 3명 축소(1명은 임시상근) △단협유효기간 1년에서 2년으로 연장 △임금동결 등의 내용으로 임단협을 합의했다. 그리고 오늘 한 노동자의 분신 사망이 일어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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